|세상터치
사랑은 사랑만을 사랑한다
얼마 전 아들은 세 돌을 맞이했다. 36개월이란 시간의 깊이를 가늠해보다가, 슬그머니 옛 기억에 빠져서 허우적댔다.
그러니까 행복과 근심, 기쁨과 슬픔 같은 것들이 마구 뒤엉켰던 시간들 글로는 뭐라고 옮기기도 힘든 감정이 한꺼번에 밀려와서,
나는 조금 난처해지기도 했던 것인데, 아이가 읽지도 못할 편지를 적기 시작 했던 건 그 감정의 실체를 조금이라도 이해해보고 싶어서였다.
아들에게 처음 써본 편지에서 나는 두 편의 시를 인용했다. 그 하나는 박목월선생의 시였다.
‘어린것을 가 키우나/하나님께서 키워 주시지.’ 밥상 앞에서’ 란 시에서 발췌했는데,
이 구절은 아들의 세 돌을 맞이하는 내 미음 그대로였다. 저 어린 것을 받아들고 쩔쩔매던 시절부터 이제는 제법 의사소통이 가능해진 순간까지,
온전히 하나님께서 키워 주셨다는 것을, 나는 믿고 감사드린다. 우리의 모든 과업이 그러하듯, 어린 것을 양육하는 일은 오로지 하나님의 섭리에 따른 일임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다음으로 인용했던 구절은 이것이다.
‘사랑은 사랑스 러운 것을 사랑할 뿐, 사랑은 사랑만을 사랑할 뿐.’
이성복 시인의 ‘사랑은 사랑만을 사랑할 뿐’ 이란 시에서 가져온 구절이다.
사랑은 사랑만을 사랑한다는 건 참으로 위악적인 표현이다. 사랑은 사랑 이외의 어떤 것도 그 목적으로 취하지 않는다는 것.
사랑의 맹목적인 특성을 시인은 저렇게 표현했던 것 일텐데, 36개월간 아들을 키워 본 결과도 그와 다르지 않았다.
무엇보다 나는 어떤 대상을 놓아한다’ 는 것과 ‘사랑 한다’ 는 것의 차이를 확실히 깨닫게 됐다.
미국 문학평론가 데이비드 오어가 홍미로운 조사 결과를 낸 적이 있다.
구글 사이트에서 어떤 임의의 대상에 대해서 나는 00을 좋아한다(like)’ 와 나는 00을 사랑한다(love)' 로 검색을 해 보면, 대체로 '좋아한다'가 ‘사랑한다’ 보다 더 많이 검색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전혀 반대의 결과가 나온 대상이 있었는데, 그게 바로 시(詩)였다고 한다.
그러니까 사람들은 ‘시를 좋아한다 는 표현보다는 ‘시를 사랑한다’ 는 표현을 훨씬 더 많이 쓴다는 얘기다.
문학평론가 신형철은 그 이유에 대해 이런 유추를 들려준다. 나로 하여금 좀 더 나은 인간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사람은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훌륭한 시를 읽을 때, 바로 그런 기분이 된다.' 나는 아이가 없던 시절 감히 사랑할 수 없었던 것들을, 이제는 기꺼이 사랑하게 됐다.
그리고 그런 맹목적인 사랑에 힘입어 매일매일 좀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다 는 갈망에 사로잡힌다.
아이는 비로소 내게 시가 된 것 일까. 내 아이임에도 해독하기 힘든 것 투성이라는 점에서,
그리고 그것을 하나하나 풀어낼 때 뭐라고 형언 하기 힘든 감동이 밀려온다는 점에서, 아이는 아름다운 시임에 틀림없다.
그 시를 읽어온 지 36개월. 앞으로 더 난해해질 그 시를 나는 사랑하고 또 사랑할 것이다. 사랑은 사랑만을 사랑하는 법이니까.
〈글 | 정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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