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터치 사십대

월간동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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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강현 기자

  • 등록 2017.12.01 15:34
  • 조회수 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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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십대


내 나이를 성찰해보는 글을 적기로 마음먹고, 나는 꽤 오랜 시간을 망설였다. 

두 가지 상반된 감정이 솟아 올랐기 때문이다. 그 하나는 그래도 사십대면 지난 세월을 반추해 볼 만한 어른이 아닌가, 

하는 자부심이다. 다른 하나는 - 사실 이게 좀 더 지배적인 감정인데 -나는 충분히 어른스러운 나이에 당도했는가, 하는 수치심이다. 

후자의 심경으로 이 글을 적기로 미음먹고, 나는 몇 해 전 펼쳐봤던 산문집의 한 구절을 떠올렸다. 

때가 얼마나 능란한지에 대한 자랑스러움보다는, 내가 얼마냐 못 미치는지에 대한 안타까움을· 더 내세우게됩니다. 

이 나이, 안타까움에 관한 한 기고만장할 나이니까요.”

김소연시인은 사십대를 ‘안타까움에 관한 한 기고만장할 나이’ 라고 적는다. 

몇해 전 '마음사전’ 이란 산문 집에서 읽은 이 문장을, 나는 비로소 이해하게 됐다.

달포 전 나는 더 이상 만으로도 삼십대라고 우길 수 없는, 꽉 찬 마흔살이 됐다. 

저 문장의 진실을 불가피하게 이 해하는 나이에 당도한 것이다. 

하지만 나는 저 정확한 문장을 정확하게 이해하면서도 조심스런 반발심도 솟아오른다. 

세상엔 아무래도 안 타까운 일과 아무래도 안타까운 것들 투성이지만, 그건 시선을 과거로 향할 때다. 

시선이 미래의 어느 곳을 향 한다면, 사십대가 '셀렘'에 관한 한 기고만장할 나이가 될 수 도 있지 않을까. 

마흔 번째 생일 아침. 나는 아들의 손을 잡고 생애 처음으로 유치원 입학 설명회를 다녀왔다. 

조막만한 손을 잡고 유치원 곳곳을 구경하면서 나는 조금 많이 설랬다. 

아침에 목청껏 생일 축하 노래를 불러준 아들을 꼭 껴안고서, 나는 두 눈을 미래의 어느 지점에 맞추고 살아간다면, 

세상엔 아무래도 설레는 일과 아무래도 설레는 것들 투성이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진실의 편에서라면, 김소연 시인이 옳다. 그러나 내 의지의 편에서라면, 나는 설렘이 계속되는 삶을 맹신하고 싶어진다. 

해서 아이를 재우고, 황정은 작가의 장편 소설 〈계속해보겠습니다〉를 다시 읽는 것으로 마흔 번째 생일 밤을 지축했다. 

이 소설이야말로 안타까운 인물들의 안타까운 이야기이거니와, 그 마지막은 다음과 같은 서술로 문을 닫는다. 

「(우리는) 세계의 입장에서는(중략) 무의미에 가까울 정도로 덧없는 존재들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소중하지 않은 걸까, 생각해보면 도무지 그렇지는 않은 것입니다.(중략) 오래지 않아 날이 밝을 것입니다. 계속 해보겠습니다.」 

사십대가 무분별한 꿈을 무작정 밀어붙일 나이는 아니겠지만, 부스러기 꿈이라도 계속해서 뭉쳐가며 살아 보려 한다. 

안타까운 지난날보다 설레는 앞날을 바라보며 느릿느릿 걷다보면, 사십대에도 더러 밝은 날들이 찾아오지 않을까. 계속해보겠습니다! 

〈글 | 정강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