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터치
사랑의 재발명
국가라는 공동체가 이렇게 속절없이 무너져도 좋은가. ‘최순실사태’ 는 대한민국을 어디로 끌고 가는가. 지난해 하반기의 몇 달은 이 질문에 사로잡혀 보냈다. 국가라는 거대한 공동체의 몰락을 안타까워하며 하루하루를 보내던 때에, 단편 애니메이션 한 편을 우연찮게 봤다. 제목이 작은 큐브로 만든 집 (la maison en petits cubes)' 이다. 이 애니메이션에도 몰락한 공동체가 나온다. 물론 해수면 상승에 의한 자연적인 몰락이란 점이 지금 대한민국 공동체의 형편과는 다르긴 하다.
그러나 영상 위에 펼쳐진 수몰된 도시는 지금의 대한민국을 은유하는 장면처럼 내게 읽혔다. 하지만 정작 나를 무너뜨린 건 그 폐허와도 같은 장면이 아니었다. 수몰된 공동체에서 유일하게 버티고 있는 단 한채의 집. 그 집의 적막한 고독감이 나를 기묘하게 잡아당겼다.
그 집의 유일한 거주자인 독거노인은 물이 차오르면 아래층을 포기하고 새로 한 층을 올리는 방식으로 삶을 지탱하고 있다. 그런데 어느 날 담배 파이프를 물에 잠긴 아래층으로 떨어뜨리고 만다. 노인은 아예 잠수복을 갖춰 입고, 그 물건을 찾으러 내려간다.
그러나 그 아래층에서 그는 과거의 자신과 마주 친다. 아래층에 내려오니 과거의 '나’와 나를 지탱 해주던 ‘누군가' 에 대한 기억이 자신을 놓아 주지 않는 것 이었다. 그는 내친김에 더 아래로 내려가 보기로 한다. 이제부터 노인은 한층 한층 거슬러 내려가면서, 자신의 시간을 과거로 돌려본다. 아내가 곁에 있던 시절을, 딸이 결혼하던 날을, 어린 딸이 어리광을 부리던 모습을, 또 해수면 상승으로 공동체가 수몰되기 이전, 젊은시절의 자신과 아내가 연애하던 장면을 노인은 가장 아래까지 내려와 자신의 집을 올려다본다. 아, 사랑하던 이들을 잃어가면서, 나는 저 많은시간들을 어떻게 쌓아 올렸던가.
나이가 들어간다는 건 사랑하는 이들을 잃어가는 일인 것일까. 그렇다면 폐허가 된 공동체는 사랑을 상실할 경우 찾아오는 필연 같은걸까. 이 애니메이션에선 시간의 흐름 속에서 사랑하는 이를 잃을 때 마다 해수면이 상승하고, 집은 조금씩 잠긴다. 마침 내 지금은 도시에 노인 홀로 남아있다. 그러니까 이렇게도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사랑을 잃지 않았다 면, 공동체가 몰락히는 결과도 없었을 것이다.'
2017년 새해, 우리 공동체는 끝을 모르고 몰락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 공동체가 사랑을 재발명한다면, 완전히 수몰되는 사태는 없을 것이다. 사람과 사람이 이어져 공동체를 이룬다. 그렇다면 그 매듭은 바로 사랑일 것이다. ‘작은 큐브로 만든 집’ 의 마지막 장면. 늘 홀로 와인을 홀짝이던 노인이 빈 와인 잔을 하나 더 식탁에 놓는다. 그리고 경쾌하게 울리는 건배 소리. 비록 그 대상은 손에 잡히지 않지만, 사랑은 그렇게 재발명되는 것일테다.
누군가가 바로 곁에 있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 거기서 사랑이 재발명되고, 그런 간절함이 사람과 사람을 끈끈하게 이어준다. 2017년, 우리는 사랑을 재발명해야 한다.
〈글 | 정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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