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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정교회와 우크라이나 침공
-종교와 전쟁-
글| 김명희C 기자
지난 2월 24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며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시작됐다.
곧 끝날 줄만 알았던 전쟁은 3개월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예측불허의 양상으로 진행 중이다.
이 전쟁으로 우크라이나에서는 수만 명의 민간인과 군인이 희생되었으며,
도시는 완전히 파괴되었다.
상당수의 러시아군도 목숨을 잃었다.
최근 러시아군에 지원하는 20대 젊은이들은 모스크바에서 수천km 떨어진
극동·시베리아 지역 출신의 '흙수저' 들이라고 한다.
우크라이나 한 달 파병으로 연간 생활비를 벌 수 있다는 소리에 군대에 자원한 젊은이들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의 진실을 알지 못한 채 지원했던 젊은이들에게 돌아온 것은 '죽음'뿐이었다.
과연 이들은 누구를 위해, 무엇을 위해 목숨을 잃어야 했는가?
인류가 낳은 또 하나의 비극이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비극 이면에는 러시아 정교회의 지지가 있었다.
러시아 정교회 수장 키릴 총 대주교는 미사에서 러시아군을 축복하며
‘‘이번 전쟁은 기독교의 미래에 관한 정의로운 전쟁" 이라고 선언 했다.
모스크바 총대교구청 성직자 대다수도 러시아 군을 축복하고 전쟁을 강복했다.
지난 부활절에도 키릴 총대주교는 "(푸틴은) 러시아 국민에게 고상하고 책임감 있는 봉사를 하고 있다
’’ ‘군 복무는이웃을 향한 적극적인 복음주의 사랑"이라며,
푸틴의 우크라이나침공을 ‘성전'(聖戰)으로 정당화 했다.
키릴은 ‘신은 러시아 편이라며, 노골적으로 푸틴 대통령을 지원했다.
그렇다면, ‘‘러시아 정교회가 우크라이나 전쟁을 지지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배경에는 '제3의 로마 사상과‘'루스키 미르' 개념이 있다.
제3의 로마사상
러시아 민족은 기독교(정교)의 이념을 수용하면서 고대 러시아인 ‘루시(키예프공국 초기)를 열었다.
정교회의 전래와 토착화 과정에서 러시아인들은 자신들을 ‘위대한 민족'
신으로부터 ‘선택받은 민족’으로 승화시켰다.
400년 동안 민족적 수난이 있었지만, 러시아인들은
러시아 정교회의 이념적 기반인 ‘성(聖) 루시' 와 ‘제3의 로마’ 사상으로 극복 할 수 있었다.
러시아에 정교회가 전래된 것은 988년 블라디미르1세(978~1015) 대공이
비잔틴의 황녀 안나를 아내로 맞아 그 자신이 정교회로 개종하면서부터다.
그는 비잔틴 제국에서 유입된 정교회를 국교화하면서 전 국민에게 세례를 받도록 명령했다.
초기 러시아인들은 비잔틴을 능가할 수 있는 민족적 자긍심을 정교회의 토대 위에 세우려 했다.
이후 정교회는 정치적으로 혼란과 분열의 상황에서 민족적 공감대 형성의 구심점이 되었다.
이뿐 아니라, 러시아의 중세 민족국가 형성과 민족적 통합 및 부흥기에는
국가지도자와 상호 협력관계를 형성하며 국가종교로서 자리를 굳혀갔다.
1453년 동로마제국과 정교회의 중심이었던 콘스탄티노플(현재 이스탄불)이
이슬람의 오스만 투르크족 에게 함락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러시아인들은 이 사건을 '세계적인 재앙' 이라고 생각했다.
동유럽 상당수 지역의 정교회들도 오스만 투르크의 영향권 아래 있게 됐다.
그러자 로마 가톨릭교회는 타락했고, 정교회의 본산 비잔틴은 멸망했다는 여론이 팽배해졌다.
제1의 로마와 제2의 로마(콘스탄티노플)를 뒤로하고 이제는 러시아가 제3의 로마 라는 사상이 출현했다.
러시아인들은 러시아 정교회에 그리스도교의 최종적 정통성이 있다고 믿었다.
그들은 제3의 로마 사상에서 러시아의 정통성을 찾았다.
모스크바 공국은 제3의 로마 사상을 지렛대 삼아 국제적으로 실추된 정교회의 위상을 회복시키고,
국내적으로 분열되어 있던 민족국 가를 통일시키려 힘썼다.
제3의 로마 사상은 1492년 모스크바의 대주교 조시마가
‘모스크바가 새로운 콘스탄티노플' 이라고 선포하면서 본격화되었다.
제3의 로마 사상을 기반으로 러시아는 ‘거룩한 나라' 이고,
러시아 민족은 ‘선민' 이라는 자의식이 생겨 났다.
교회와 국가가 공존의 관계를 형성하며 러시아는 특별한 나라로 격상됐다.
러시아 정교회는 점차 정치 권력에 개입하면서 정치와 유착 관계를 형성했다.
교회와 국가의 공생관계는 1917년까지 이어 졌고,
2009년 러시아 정교회 수장 총대주교 키릴에 이르러서는 교회와 국가의 관계가 이전보다 더 강화됐다.
특히 키릴은 푸틴 정권과의 관계를 공고히 다졌다.
루스키 미르
총대주교 키릴은 러시아 정교회와 국가의 관계를 ‘루스키 미르’ 개넘을 통해 정당화한다.
루스키 미르 란 ‘러시아 세계’ 혹은 ‘러시아 평화가 실현되는 국가통합의 문명 공간이다.
키릴은 문명 공간을 구성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요소가 정교회 신앙이라고 주장한다.
모두가 키예프(키이우) 교회 아래에서 세례를 받았기에 공통적 문명 공간인 '루스키 미르’의 일원이라는 것이다.
우크라이나와 벨라루스가 러시아와 연합 해야 하는 이유다.
삼국 모두 루스키 미르에 속해 있다.
푸틴은 루스키 미르에 따라 모스크바를 중심으로 주변 국가가 하나의 국가로 연합하길 원한다.
키릴도 러시아, 우크라이나, 벨라루스가 루스키 미르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더욱이 그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루스키 미르를 성사시키기 위한 사목미션이라고 믿는다.
오늘날 러시아가 왜 우크라이 나를 침공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이에 대해 우크라이나 언론들은 ‘루스키 미르’ 개념을
‘우크라이나를 식민지로 만들기 위한 총대주교 키릴의 새로운 사상’이라고 비난한다.
성전과 신성시된 전쟁
『성전, 문명충돌의 역사』를 쓴 자크 G. 루엘랑은 ‘성전’ 과 ‘신성시된 전쟁’ 을 구분한다.
‘성,(聖, holy) '이 하나님 자체의 신성(神聖)을 가진다면,
‘신성시’ (神聖視,sacred)는 인간들의 숭배대상이 되는 것을 의미 한다.
‘신성시’ 는 인간이 어떤 것에 신성을 부여하면서 하는 숭배를 표현하는 말이다.
지구상에 일어나는 전쟁 중에는 신이 직접 참여하는 ‘성전’ (聖戰)은 없다.
신의 이름으로 일어나고 있는 ‘성전 은 ‘신성시된 전쟁'일 뿐이다.
인간에 의해 신성시된 전쟁, 즉 정당화된 전쟁만이 세상에 존재한다.
키릴 총대주교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성전으로,
푸틴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신성한 전쟁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우크라이나 전쟁은 성전이 아니다.
인간이 신성시한 전쟁일 뿐이다.
키릴은 우크라이나 침공을 신이 지지하고 있으며, 푸틴은 신의 선물이라고 말한다.
사실 우크라이나 전쟁은 인간의 탐욕을 위해 신의 이름을 앞세운 신성시된 전쟁일 뿐이다.
독일의 선학자 몰트만은 종교가 올바른 정치적 기능을 실천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국가 교회를 만들어 히틀러에게 충성을 맹세했던 독일교회 처럼,
러시아 국가의 전쟁을 정당화하며 지지하는 러시아 정교회가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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