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터치 고통 감수성에 대하여

월간동행

|세상터치 고통 감수성에 대하여

정강현 기자

  • 등록 2017.06.01 12:19
  • 조회수 113

|세상터치 


고통 감수성에 대하여 


어쭙잖은 작품이지만 소설집을 내본 처지여서, 간혹 어떤 소설이 좋은 소설이냐는 질문을 받을 때가 있다. 

내 대답은 거의 항상 같은 편인데, 내게 좋은 소설이란 가장 잘 아파하는 소설이다. 

그러니까 타인의 고통을 잘 느끼는 작가가 등장인물의 아픔 속으로 깊이 들어간 소설이, 냐는 좋은소설 이라고 생각한다. 

최근에 그런 소설을 읽었다. 김영하 작가의 ‘오직 두 사람’ 이란 소설집인데, 예컨대 이런 식이다. 

‘아이를 찾습니다’ 란 단편에는 이런 이야기가 실렸다. 

부부가 마트에 갔다가 세 살난 아들을 잃어버렸다. 

아이의 아빠는 신형 휴대폰을 구경하느라, ‘잠시’ 잡고 있던 카트 손잡이를 놓아버렸다. 

하필이면' 엄마는 그걸 못 봤고, 화장품 구경을 하고 있었다. 

때마침 누군가 카트를 끌고 사라졌고, 그로부터 11넌간 아이를 찾는 이야기가 펼쳐진다. 

고통 속에서 엄마는 조현병을 얻었고, 아빠는 멀쩡한 대기업을 그만두고 막노동을 전전하면서 아이를 찾는 데 사력을 기울였다. 

아이를 유괴했던 한 간호사가 엄마노릇을 하면서 키웠는데, 

그 가짜 엄마마저 자살하자, 아이는 유전자 검사를 통해 진짜 부모에게 인도된다. 

그런데 그 이후 가족은 더 큰 고통 속으로 빠져든다. 

그렇게 인물 속으로 들어가다 보면, 나는 타인의 고통 에 대해 조금은 더 이해하게 되는데, 

좋은 소설은 그 이해의 공감대가 넓고 깊게 형성되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내가 이 소설집에 특히 인상 받았던 것은, 작가가 보여준 특별한 고통 감수성 때문이기도 했다.

고통 감수성이란, 타인의 고통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능력을 뜻하는 것인데,

‘작가의 앨의 다음과 같은 대목이 니를 흔들었다. 

‘작가는 팩트를 확인하고 인용할 근거를 찾는 사람이 아니라 다른이들을 대신하여 날 느끼는'사람이 아니겠는가. 

나는 잘난 팩트의 세계를 떠나 근거 없는 예감의 세계로귀환했다.' 

잘난 팩트의 세계라면 나도 모르지 않는다. 그게 세계의 진실이라면서, 보도 행위를 하는 게 내 업이니까. 

하지만 그 잘난 팩트의 세계가 지닌 치명적인 오류도 나는 안다. 

팩트의 세계란, 감수성을 발라낸 앙상한 세계다. 날 느끼는’ 사람보다는 말아는’ 사람이 대접받는 곳이다. 

그곳이 치명적인 이유는 타인’ 이 잘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타인이 아파하는 걸 느끼는 게 아니라, 타인이 아픈 정확한 근거를 찾는 데 혈안이 된 곳이 바로 팩트의 세계다. 

물론 그것도 충분히 중요한 일이다. 

그러나 잘 느끼는 사람이 더 많을수록 더 따뜻한 세계가 되지 않을까. 

우리 공동체에 고통 감수성을 갖춘 사람이 더 많아진다면, 이 세계만큼 좋은 소설 작품도 없을것이다. 


〈글 | 정강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