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어릴 적부터 잠자는 것을 사랑했고 한번 잠들면 흔히 말하는 통잠을 잤다. 지금도 잠 자는 것은 사랑스러운 행위라고 여긴다. 그런데 성경을 보면 잠을 많이 자는 것이 죄스럽게 느껴진다.
“게으른 자여 네가 어느 때까지 누워 있겠느냐”(잠6:9) “잠 자기를 즐겨 하는 자는 해어진 옷을 입을 것임이니라”(잠23:2)
이런 말씀을 보면서 어찌 잠자는 것을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목회자의 길을 걷게 된 이후 잠은 줄이면 줄였지 늘릴 수는 없는 것이 필자가 처한 현실이다. 수면과 관련된 한 설문결과를 보면 설문에 참여한 이들 3분의 1이 늘 수면 부족에 시달린다고 한다. 반면, 충분한 수면을 취한다고 하는 이들은 10명 중 한 명꼴이다. 그렇다면 열에 아홉은 수면이 부족하다고 느끼는 것이다. 수면 부족은 필자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세계보건기구 WHO는 하루 평균 적정 수면시간으로 8시간을 제시한다. 그러나 8시간을 수면으로 온전히 채우는 사람이 많지는 않다. 또한 수면 부족을 문제시하기보다는 오히려 열심히 살았다는 증거나 훈장처럼 여기는 경향도 있다. ‘사당오락’같은 말이 왜 나왔겠는가? 물론, 다른 이들과의 경쟁에서 앞서려면, 또 더 많은 시간을 확보하려면 남들 잘 때 다 자면 어떻게 하느냐는 등의 논리로 수면을 포기할 수밖에 없다. 시간이 촉박하거나 정말 중요한 시험을 앞둔다면 수면 부족이란 선택을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것이 수면 부족을 정당화시킬 수 없다. 수면은 곧 건강과 직결되는 문제다. 수면이 부족해도, 건강을 잃어버리면서까지 신앙생활을 한다는 것은 어불성설(語不成說)일 뿐이다.
이제부터가 중요하다. 잠이 짧아질수록, 수명도 짧아진다고 한다. 수면 부족이 지속될수록 몸에 부정적인 영향을 준다. 즉, 10일간 수면 부족을 겪게 되면 이전의 상태로 회복되는데 7일 이상의 시간이 걸린다는 연구 결과 폴란드 야기에우워대 연구진이 ‘플로스원’ 9월호에서 발표한 수면 부족에 관한 연구 결과도 있다. 충분한 수면은 기억력과 창의력 강화, 암과 치매 등 여러 질병의 위험도 낮춰준다고 한다. 현대인이 겪는 어려움 가운데 ‘수면 부족’은 바쁘게 살다 보니 그럴 수 있다고 단순히 넘길 일이 아니다. 특히, 그리스도인들은 가정이나 직장 외에도 수면 부족의 이유가 되는 것이 있다. 신앙생활이 추가되기 때문이다. 신앙생활을 한다고 하면 ‘두 마리 토끼를 잡아야 하기에’ 수면시간을 줄여야 한다. 새벽기도를 위해서는 새벽잠을 줄여야 하고 금요철야를 위해 밤잠을 줄여야 한다. 기도와 말씀, 예배를 위해서도 수면시간을 적절히 조절하거나 줄여야 한다. 그렇다보니 신앙생활을 잘하려면 수면 부족은 피할 수 없다.
그럼 그리스도인은 수면 부족을 숙명(宿命)으로 여기며 살아야 하는 것인가? 그렇지 않다.
건강을 위해 충분한 수면이 필요하듯이 신앙적으로도 수면이 충분해야 한다. 시편 127편 2절을 보면,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그의 사랑하는 자에게는 잠을 주시는도다”라고 하였다. 하나님께서는 사랑하는 자에게 잠을 주신다는 것은 수면을 취한다는 것이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이며 은혜라는 것이다. 수면은 하루를 마치고 다음 날을 위한 쉼의 시간이며, 재충전의 시간이다. 그런 의미에서 마냥 줄일 것이 아니라 충분히 누려야 하는 것이다. 물론, 잠을 자고 싶음에도 수면을 취하는 것이 어려운 분들도 있을 것이다. 그런 분들에게 하나님께서 단잠의 은혜를 주시길 소망한다. 아무쪼록 우리의 삶, 특히 신앙적으로도 수면은 충분해야 한다. 그렇게 하려면 먼저 내 삶에 필요한 수면을 인정해야 한다. 더불어 양질의 수면을 위한 스스로의 노력이 필요하다. 그리고 충분한 수면, 양질의 수면을 위한 노력은 곧 신앙생활을 잘하는 결과로 이어져야 할 것이다.
이것이 왜 신앙적으로 수면이 충분해야 하는가에 대한 답이기도 하다. 수면을 죄스럽게 여기지 않고 충분한 수면을 취함으로 하나님께서 내게 주어진 역할을 잘 감당하며 무엇보다 신앙생활을 잘 해나가는 영은교회 성도들이 되기를 소망해본다.
Copyright @2024 동행.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