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건 모임, 자발적인 혁신의 움직임

월간동행

경건 모임, 자발적인 혁신의 움직임

글 | 이찬양 목사

  • 등록 2024.03.01 15:59
  • 조회수 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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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부터 한국교회는 양질의 소모임에 대한 필요성을 절감하고, 이에 대한 깊은 관심을 가져왔다. 제자훈련, 셀모임, 목장모임, 가정예배 등의 용어들만 보더라도 한국교회는 이전부터 소모임에 대한 목회적, 신학적 시도들을 하고 있었음이 분명하다. 지형은 박사는 한국교회의 제자훈련 또는 소그룹 운동의 교회사적 근거를 필립 야콥 슈페너의 ‘경건 모임’ 에서 찾으며, 슈페너의 경건 모임과 한국교회의 소그룹 운동의 연속성을 조명하였다.

 

■ 경건 모임의 시작 

한국교회 소그룹 운동의 원형이 되는 슈페너의 경건 모임은 어떻게 시작되었는가? 1670년 8월 슈페너는 자신의 목사관에서 몇 명의 성도들과 함께 공적 예배 이외의 신앙 모임인 경건 모임을 가지게 되었다. 슈페너가 설교 등을 통해 경건 모임의 설립 가능성에 대한 동기를 제공하긴 했지만, 적극적으로 경건 모임을 조직하거나 운영하려고 하는 시도는 하지 않았다. 오히려 목회자인 슈페너가 경건한 열망에 사로 잡힌 성도들의 요구를 이기지 못해 자신의 목사관에서 경건 모임을 열게 되었다. 당시 제도권 루터교회 안에서는 공적 예배 이외의 별도의 신앙적 모임을 가지는 사례가 없었고, 이러한 모임의 적절성에 대한 회의가 있었기 때문에 슈페너 나름대로는 목회적 모험을 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 모임 초반의 구성원은 대부분 귀족과 학자들이었다. 처음에는 이 모임에 여인들, 비루터교인, 하류층, 상인, 하인 등이 포함되지 않았다. 초기 경건 모임은 요한 야콥 쉬츠를 비롯한 학자그룹이 주를 이루었다. 초기 경건 모임에서는 사적 특성이 강하게 나타났다. 슈페너를 찾아온 프랑크푸르트 시민들은 세속적인 모임과 반대되는 사랑이 넘치는 공동체, 대화의 공동체를 만드는 것을 원했다. 그들은 불쾌한 세속적인 모임과 구분되는 모임을 만들 것을 요구하였다. 그래서 경건 모임은 처음에 모든 사람에게 개방 되지 않았다. 자발적으로 모임에 참여하기를 희망하는 성도들은 경건 모임을 시작한 사람들에게 허가와 동의를 받아야만 했다. 이렇게 시작된 초기 경건 모임의 구성원들은 자발적 참여를 통해 ‘거룩한 우정’ 을 지향하는 공동체를 만들 수 있었다. 

 

하지만 엘리트를 중심으로 다소 폐쇄적으로 운영 되었던 이 경건 모임은 곧 ‘분리주의자들’이라는 오명을 쓰게 되었다. 슈페너는 이 오명을 벗기 위해 경건 모임을 공개적인 모임으로 전환할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결정을 통해 다른 계층의 교인들을 수용할 수 있게 되었고, 이후 이 모임은 빠르게 성장하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이 모임에는 귀족과 학자들뿐만 아니라 상인들과 하인들, 여성들도 참여할 수 있게 되었다. 5년 뒤에 참가자 수는 50명이 되었고, 1680년대 초에는 참가자 수가 100명을 훨씬 넘게 되었다.

 

슈페너의 경건 모임이 성공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평신도들의 주도로 소그룹이 형성되고 조직되었다는 점에 있다. 슈페너는 성도들이 경건한 열망을 가질 수 있도록 설교를 통해 영적으로 도전했으며, 성도들은 그 도전에 믿음으로 응답했다. 경건한 열망을 품게 된 성도들은 슈페너에게 공적 예배 이외의 영적인 모임을 요구했고, 목회자인 슈페너는 동료들과 당국의 우려와 여러 가지 위험을 감수하고 이들의 요구에 적극적으로 화답하였다. 목회자와 성도 사이에 영적인 상호작용이 실패하지 않는 소그룹을 만들고 유지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동력이었다는 사실을 숙고할 필요가 있다.

 

■ 경건 모임의 내용 

경건 모임은 일주일에 두 번 진행되었다. 소수의 사람이 주일과 수요일에 프랑크푸르트에 있는 바르퓌 서교회(1833년 바울교회로 개명)에서 예배가 끝난 뒤 교회 옆에 있는 목사관으로 이동해 모임을 가졌다. 슈페너는 이 교회에서 1666~1686년까지 목회를 하며 경건 모임을 진행했다. 초기 경건 모임은 다음과 같은 순서들로 구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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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기도시간이다. 경건 모임의 시작과 끝에는 기도시간이 있었다. 슈페너는 기도로 모임을 시작했고, 기도로 모임을 마쳤다. 둘째, 경건 서적을 읽는 시간이다. 기도로 모임을 시작한 후에 모임에 참여한 이들은 경건 서적을 몇 페이지 낭독하고, 그것들을 요약하였다. 그 후에는 경건 서적을 읽으며 중요한 부분이나 마음에 새겨야 할 부분들을 다시 정리하는 시간을 가졌다. 


초기 모임에서 읽었던 경건 서적들의 예로 베일리의 『경건의 실천』, 뤼트케만의『거룩한 자비를 미리 맛보기』, 휴니 우스의『신앙의 개요』를 들수있 다. 셋째, 토론시간이다. 이들은 경건 서적을 읽은 뒤에 모임을 바로 마치지 않고, 그 내용을 가지고 토론하는 시간을 가졌다. 경건 모임 가운데에는 자유로운 대화가 있었다. 모든 사람이 자신의 의견을 표현하고, 질문할 수 있었다. 그러나 대화는 전적으로 경건, 하나님의 사랑, 그로부터 흘러나오는 순종과 관련한 것이어야 했다. 공동체는 지속적으로 경건 모임을 유지하기 위한 일정한 규칙을 가졌고, 이 규칙을 위반하는 자들은 징계를 받기도 하였다. 

 

슈페너의 경건 모임은 일상에서 경험할 수 없는  영적 경험을 제공하는 대안적인 소모임이었다. 단순히 친목을 도모하는 자리가 아닌, 경건의 훈련과 신앙의 성숙이라는 분명한 목표를 가지고 체계적으로 전개된 모임이었다. 친분이 아닌, 공동의 영적인 목표와 모임의 대안적 측면이 경건 모임을 단단하게 묶어주는 끈이었다는 사실을 깊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