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은의 역사, 그때 그 시절

영은의 역사, 그때 그 시절

글 / 김찬규 은퇴장로

  • 등록 2021.04.03 22:38
  • 조회수 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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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창립 61주년이 되었습니다. 

창립 당시의 일을 기록해 달라는 청을 받아, 생각나 는대로 적어볼까 합니다. 교회 창립에 대한 역사는 40넌사, 50넌사 책자에 기록되어 있으니, 책자를 읽 어보시기를 바랍니다. 지면에 실을 이야기는 제 기억 을토대로교회의 옛날이야기를들려드릴까합니다. 

영은교회는 창립 당시 58명의 적은 인원으로 시작 하였습니다. 61넌이 지난 지금 3천 여명이 되었음을 생각하면 참으로 감회가 새롭지요. 


처음 예배 처소는 60평으로 시작하여, 몇 차례의 증축을 거쳐 지금에 이르게 됐습니다. 지하 3층, 지 상 8층의 건물이 우뚝 섰고, 기도원 부지와 설악동산 까자… ...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엄청난 부흥 성장을 하였습니다. 

이렇게 베풀어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현재 58명의 창립 교인은 9명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이만큼 세월이 흐르는 동안 교역자분들의 숫자도 많이 늘었지요. 처음에는 목사님 한 분으로 시작하였 는데, 현재는 원로 목사님까지 목사님이 아홉 분이나 됩니다. 성장, 발전, 부흥케 하신 하나님의 은혜는 이 루다말할수가없습니다. 


영은교회가 터를 잡은 영등포는 예전에 ‘진등포’ 라 는 별명이 있었습니다. 먼지와 진창이 많아 장화 없이는 못 사는 곳이었지요. 현재 마을버스가 지나는 교회 옆 도로는 도랑이어서 악취도 심했습니다. 교회 터는 무와 배추를 기르는 재소밭이 었고요. 주변에 공 장도 많았지요. 특히 동아염직, 대동모방, 대한모직 의 큰 방직공장이 세 개나 있었습니다. 우리 교인들도 3사의 직원들이 주를 이루었고, 지방 사람은 극소 수였습니다.  


수요예배가 7시 30분이 된 것도, 방직공장 회사의 퇴근시간이 저녁 7시였기 때문에, 그시간에 맞추어 오늘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교인들의 거주지는 대체로 목동, 오류동, 구로동, 신길동 외에 교회 주변 회사의 기숙사였습니다. 대부 분 주일이 되면 그 먼 거리를 걸어서 교회로 왔지요. 당시 교통수단은 마이크로 버스가 유일했습니다. 초대 목사님이신 박조준 목사님의 자가용은 자전거였 습니다. 

성탄절도 기억이 납니다. 성탄절 저녁이면 성가대, 청년부, 전도회 등 그룹을 지어서 선물도 준비해 서 로 교환하고 즐거운 시간을 보냈지요. 그러다가 예배 시간이 돌아오면 성탄 축하 예배를 드리고, 각 성도님 가정에 새벽송을 돌았습니다. 

교회에서 소풍을갔던 것도 참 즐거운 추억입니다. 각 가정에서 도시락을 싸들고갔지요. 지금은 양천구에 속한 고척동 뒷산으로 가곤 했는데, 어른이든 어린 아이든 교회에서부터 걸어서 갔습니다. 당시 함께 소풍을 다니던 어린아이가 지금은 환갑이 다 되었습니다.


운동회도 했었습니다. 당중초등학교 교정에서도 하고, 당시에는 영등포구청역 근처에 있던 영등포공고 교정에서도 했습니다. 백군 청군을 나누어 기량을 겨 루며 신나고 즐거운 시간을 보냈지요. 성도의 친목 교제가 은혜롭게 이루어졌습니다. 

영등포공고에서는 주일학교에서 준비한 십자가 행렬도 있었습니다. 어린 학생이 무거운 십자가를 지고 운동장을 돌 때, 전교인들이 다 뒤따라 걸었습니다. 주님의 고난길을회상하며, 큰은혜의 시간을가졌습 니다. 


교인 중 장례가 나면 지금은 장례식장을 찾아가지 요. 당시에는 고인을 집에 모시고 목사님 장로님 집 사님들께서 직접 찾아가, 염도 하고 수의도 입히고 입관도 했습니다. 교인들이 교대로 밤을 새워가며 위 로하고 장례를 다 치르곤 하였지요. 

교회 심방도 열심이었습니다. 심방팀을 구성하여 시간에 맞추어 교회에 모여서 성도의 가정으로 출발 했습니다. 심방은 특별 심방과 일반 심방이 있었는 데, 주로 권사님들이 많이 다니셨지요. 아무리 먼 곳 이라도 걸어서 찾아갔습니다. 구역 식구들끼리 모여 구역예배도 자주 드렸습니다. 구역예배는 주로 장로 님, 권사님들이 오셔서 함께 해주셨고, 때로는 그 자 리에 목사님이 오셔서 인도해 주실 때도 있었습니다. 


초창기 교회는교인수가적다보니, 서로가서로를 잘 알았습니다. 목사님 가정이든, 장로님 가정이든, 권사님 집사님 가정이든간에, 각 가정의 자식이 누구 인지도 다 알고, 집이 어디인지, 무엇을 하는지 모두 다 알았습니다. 세상을 살 땐 떨어져 살아도, 주일에만나면 가족이 모인 듯 반가웠지요.


지금은 어떻습니까? 교인의 수가 많아졌으니 전부다 알수 없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겠지요. 그러나저 분이 누군지, 목사님인지 장로님인지 권사님인지, 가족 관계가 어떻게 되는지, 알 수도 없고 알고 싶어하지도 않습니다. 무관심이 현실이 되었습니다.

더구나 요즘 코로나 바이러스로 교회가 더욱 침체 되어 있고, 거리두기 탓에 집회가 자유롭지 못합니 다. 예배조자 제한을 받는 시점에서 성도님들의 믿음이 걱정됩니다.

이런 시기일수록우리의 믿음을굳게 지켜, 담임 목사님의 목회 방침을따라 ‘지경을 넓히자' 는 표어 아래 성도님 모두 한마음 한뜻으로 교회를 잘 섬겼으면 좋겠습니다. 언제 어느 때이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교회가 되었으면 합니다.